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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프랑스 여행 중 느낀 '국가영묘'의 특징에 대하여 이번 파리 여정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국가영묘에 대해서였다. 한국의 국가영묘라고 한다면 현충원이다. 한국의 현충원에서 이뤄지는 문제는 한국의 국가기억에 대한 문제들이 드러나는 현장이며, 정치적 논란의 장의 연속으로서 현충원의 논란들은 나타난다. 다만 이는 영묘로서 현충원이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능한 문제이다. 만들어지고, 고정되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영묘라고 한다면 웨스터민스터 사원이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써주었던 힐버트의 말을 특별히 인용하지 않더라도,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런던에 위치한 세인트폴 성당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국가적 추모 시설인 국가영묘라고 할 수 있다.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영국의 중세 시대의 왕들부터 .. 더보기
한국의 전쟁기념관을 영국의 제국전쟁박물관에 비춰보며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아쉬운 기념물은 전쟁기념관이다. 어릴 때부터 박물관을 즐겨 다니면서 한국의 박물관과 기념관에 대해서 여러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기념관을 갈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언제나 느껴야 했다. 전쟁기념관에서 느끼는 곤혹스러움의 원인은 도대체 우리가 왜 그렇게 싸워야 했는가에 대해서 타자의 탐욕과 비도덕적 행위, 그리고 이념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진행되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고, 무엇을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결국 보이는 것은 우리의 상흔이다. 그러한 상흔의 기념이 복수심은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러한 상흔을 입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부족해진다. 결국 우리.. 더보기
'망각'과 '기념'에 대한 잡념. 잊혀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인가? 아니 그렇진 않을 것이다. 나도 몇 가지를 기억의 저편에 두고 갔기에 앞으로 나갈 수 있던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망각은 후퇴나 퇴화가 아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선택되기 때문에 기념과 추모는 의미를 가진다. 즉 망각은 무조건적인 탈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망각과 달리 잊혀진다는 것은 다른 의미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혹은 내 자신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욕망은 사실 개인이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망각은 권고될 수 없다. 그것을 권고하고 싶을지 몰라도 그것은 타자에 의해 강제되기에는 매우 뼈아픈 일이다. 집단기억을 연구하고 그것이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수없이 던지는 사.. 더보기
'사적 추모'에 대한 서언 동북아시아의 3국. 즉 한 중 일이 가지는 추모와 기념의 형태는 사실 유사하다. 대부분 이러한 추모의 형태의 원천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사당’과 ‘위패’의 형태이다. 사실 이러한 ‘사당’과 ‘위패’의 추모의 단위는 본래 하나의 혈족, 혹은 인척 이상을 넘지 못한다. 즉 ‘사당’과 ‘위패’로 나타나는 추모의 형태는 궁극적으로 개인적이며 어떠한 공동체의 합의나 혹은 합리에 의한 추모가 아닌, 당위와 윤리로서의 추모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대부분의 추모의 대상이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개인을 지향한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 추모와 기념이 추모와 기념 대상이 공동체와 공적 체제에 기여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개인적인 ‘희생’과 ‘죽음’을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추모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