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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판타지

Diary

by Fulton 2011.07.0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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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비오는 밤이다. 비를 맞고 들어온 밤에는 뭔가 마음이 차분해져 온다. 그 마음이 차분해짐에 꿈을 꾸듯 눈을 감고 다른 세상을 본다. 그 세상은 아무 것도 흐리지 않고 멈춰있다. 그 멈춰 있는 세상위에서 난 글을 쓴다. 내 만년필의 잉크만은 흐른다. 하지만 내 피도, 내 호르몬도, 내 뉴런의 물질들도 모두 흐르지 않고 멈춰있다. 내 만년필의 잉크만 흐른다. 내 만년필의 잉크가 내 피이자, 호르몬, 내 뉴런의 물질이다. 모든 것은 잉크를 통해 가능하다. 삶도 죽음도. 그런 다른 세상을 비를 맞고 온 날 눈을 감으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깔끔하게 난 눌러 지워버린다. 잉크만이 살아있는 세상이라니. 그건 너무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그런 세상을 보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그 곤혹스러움 앞에서 씁쓸해져 오기만 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비를 맞은 날에는 늘 마주치는 세상이다. 내세도 현세도 아닌 그런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은 모두가 죽어 있고 잉크만 살아 있다. 심지어 그런 세상을 보는 나도 살아 있는 몸이 아니다.

그 세상에서 돌아온 지금 이 세상은 비가 그쳐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내 정신은 어떤 티끌도 구름도 없을 만큼 맑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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