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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Korean Politics

한국이 인식하는 안보문제의 한계 : 안보의 과잉동원과 안보달성의 부족 사이에서

예전에 안보의식 결여와 안보과잉에서 이어지는 문제의식의 글이다. 한국은 사회적 메시지로 안보가 가지는 힘이 강한 집단이다. 허나 문제는 이러한 안보의 대해서 굉장히 일차원적인 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의 안보는 많은 부분 국가안보/군사안보와 동일시되거나 혹은 귀속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전통적인 안보개념인 국가안보/군사안보와 대치되는 비전통안보적 개념인 인간안보에 대해서도 한국은 이를 국가안보/군사안보적 맥락안에서만 허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안보문제를 주로 다루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Morgan은 안보의 층위를 국제체제 안보- 국가안보 사회안보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또한 셋이 서로 맞물릴 수도 있지만 셋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 예를 들어 공포의 핵균형이 이뤄지는 세력균형 체제하에서는 국제체제 안보의 경우에 있어서는 안정성이 높아지지만, 국가안보적 차원에서의 불안은 심화되며 동시에 사회안보적으로도 핵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국가의 사회의 경우에는 국가안보에서의 불안이 그대로 전이되지만, 핵이 마주하지 않는 국가들은 오히려 핵에 의해 전쟁이 억지되는 상황에서 사회안보의 안정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의미 중 하나는 안보에 있어서 민주주의/권위주의 체제를 가리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단 국제체제와 국가는 층위적 측면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Waltz가 제시했듯이[2] 유효하며, 국가와 사회가 일체적이지 않다는 것은 시민사회를 강조한 하버마스나 뒤르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안보의 층위와 대상/행위자를 개인까지 낮출 수 있는 인간안보의 개념까지 들어오면 안보 개념의 충의는 훨씬 더 다양해진다. 사실 탈냉전 이후의 안보 개념은 여기까지 확장되고 있고 이미 북유럽의 안보 문제는 단순히 security가 아니라 resilience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3]. 그리고 안보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주제도 유럽은 이미 이민’, ‘질병’, ‘환경의 문제로 전환하고 있고, 사실 유럽의 안보연구소에서 나오는 주제들도 저러한 주제들이 주를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유럽과 한국의 상황은 차이가 존재한다. 북한이라는 전통안보적 위협이 존재하는 이상 한국에서의 전통안보적 이슈가 유럽의 비전통안보적 이슈를 압도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한국은 비전통안보 이슈가 한국의 국가와 사회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가? 혹은 그 비중이 정말 북한이 가하는 전통안보적 위협보다 안보불안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고 말할 수 있는가?


첫째, 안보문제는 기본적으로 계량적이라기보다는 위협과 위협인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심리적이다[4]. 다른 말로 바꿔 설명하자면 적국이 포를 하나 가는 상황 a와 포를 두개 가지는 상황 b의 위협 차이가 2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과 요소가 다양할 때마다 국가나 사회가 느끼는 안보 불안의 요점은 그 이상 증가한다. 북한이 단순히 재래식 무기로만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생물학무기/특수부대/사회교란 등으로 한국에 대하여 도발을 하는 이유도 이러한 점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은 과연 북한만이 제공하는가? 오히려 북한 외에 다른 요소가 적지 않게 작동하는 것도 어느 정도 고민해야 한다.

둘째, 그리고 과연 국가간 관계에서만 안보문제가 도출되는가? 오늘 날의 전염병 문제와 중국에 의한 경제의존도에서 비롯된 문제들 역시 안보문제로 볼 수 있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정보보안 문제이지만 중국의 해커들에 의해 해킹당한 개인정보 문제 역시 명백히 개인과 사회단위에서는 신뢰성의 약화로 이어지는 안보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과연 안보의제화(securitization)[5]하고 있는가?


셋째, 과연 한국은 안보(security)와 방위(defense)를 구분하고 있는가? 엄밀히 말하면 defense는 안보를 달성하는 하나의 방식 중 하나이다[6]. 사실 한국에서 안보를 다루는 방식을 살펴보면 방위와 안보를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럽의 안보적 접근에서 resilience가 대두한 가장 큰 이유는 방위에 의한 안보만으로 안보 달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안보정책과 안보를 다루는 표어를 살펴보면 이른바 철통봉쇄를 강조하며 이러한 철통봉쇄를 위해 사회적 비용도 당연히 감수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방위를 위해 지출되어야만 하는 사회적 비용과 방위로 달성가능한 안보이익의 총합과 방위적 접근이 아닌 수단에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과 이를 통해 달성가능한 안보이익의 총합이 과연 비교되고 있으며, 전자의 총합이 후자의 총합보다 크다는 것이 나타나야 한다. 과연 이러한 공리적 비교는 이뤄지고 있는가?


한국의 안보접근에 있어서 문제 중 하나는 안보의제화를 국가가, 국가에 의해서만 독점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안보에 의해서 전체의 안보를 달성한다는 수단적 접근은 가능하지만, 문제는 국가안보만이 유일한 안보이며, 국가안보가 모든 정책 영역에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탈냉전 이후에 변화한 안보 개념에 대해 고려해본다면, 납득하기 쉽지 않다. 무조건적으로 비전통안보의 수용을 서구 수준으로 향상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안보의 문제가 단순히 북한에게 집중되는 것을 넘어서, 전통적인 국가안보만이 안보로 인식되고 있는 문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안보 영역은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고, 따라서 위협이 가능해지는 영역 역시 넓어지고 있다. 북한의 해킹 이전에 사이버안보의 문제가 정책 수준에서 논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면, 한국은 안보를 과잉동원하고 있지만 과연 그 동원하는 만큼의 안보달성이 이뤄지고 있음은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1] Morgan, P, 『국제안보: 쟁점과 해결』(서울: 명인문화사, 2011). p. 12-22.

[2] Waltz, K, 『인간, 국가, 전쟁: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 고찰』(서울: 아카넷, 2007) p. 31.

[3] Wagner, W., & Anholt, R. (2016). Resilience as the EU Global Strategy’s new leitmotif: pragmatic, problematic or promising?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 1–17, Kaufmann, M. (2015). Exercising emergencies: Resilience, affect and acting out security. Security Dialogue 47(2), 8–9.

[4] Paul, T. V., Morgan, P. M., & Wirtz, J. J. (2009). Complex Dterrence: Strategy in the Global Ag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3.

[5] Buzan, B & Hansen, R, 『국제안보론(서울 : 을유문화사, 2010) pp. 327-332.

[6] Art, R, 'The Four Functions of Force' (in) International Politics: Enduring Concepts and Contemporary Issues, (N.Y. :Pearson, 2012), pp. 16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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