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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Korean Politics

R2P(보호책임)과 북한의 핵문제 : 태영호의 인터뷰를 보고

http://news.donga.com/Main/3/all/20170102/82133261/1


태영호 “유고 내전때 美가 폭격… 김정은, 그런 사태 두려워 핵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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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Main/3/all/20170102/82133261/1#csidx8db07082387bed9a480b40fa6eacf5f

태영호의 인터뷰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내 추론이 더 확고해진 것도 있지만 기존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들이 있었다. 보스니아 내전-코소보 내전과 북한의 핵보유와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북한은 미국이 결국 유고 분규에 개입하여 세르비아 주도의 상황의 반전시켰고, 이런 유사한 상황이 있기 전에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미국은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는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설명인데 R2P(보호책임)의 확산과 정책적 구체화가 북한의 핵무장의 동기를 더 격화시켰다는 설명이다.


R2P80년대 후반부터 언급되던 개념으로, 유엔 사무총장인 아난의 르완다와 코소보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유엔의 효과적인 인도적 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의 촉구에 대해, 2000 9월 캐나다는 인도적 개입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위원회를 만들었다. 여기서 2001 12월의 최종보고서를 통해서 인권 보호에 국가와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이 있다는, 그래서 개별국가가 인권보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개념을 만들어냈다(ICISS, 2001a).[1]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국제정치에서 간주되던 베스트팔렌적 주권의 개념에 대한 현대적인 도전이었다. 타국의 내부에서의 인권말살의 문제에 대해 외부와 국제사회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이른바 국가주권 이전에 개인의 주권이 먼저이며 따라서 개인의 주권이 말살되는 위기상황에서는 국가주권을 넘어서 국제사회의 책임 하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R2P의 개념이 엄밀해지고 확산되면서, 90년대 이후 비인권적인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는 국제레짐적인 차원에서의 개입이 가능해졌고 이는 2010년대에도 리비아와 시리아 등의 분쟁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명 R2P는 이제는 국제제도적 차원에서 수용되고 있으며, 이른바 외부 세력이 베스트팔렌적인 국가주권을 관통하여, 개인의 주권이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받고 있을 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를 심각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사회적으로 북한은 인권문제로 심각하게 공격받고 있으며, 체제 내부의 불안요소가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아예 없다고는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북한의 비인도적인 움직임에 대해 국제사회가 개입을 R2P를 내세워 진행할 수 있으며, 이에 북한의 김씨왕조체제가 내부에서의 불안과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통해 붕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르비아, 리비아, 이라크, 아프간의 탈레반이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쳤었다.


북한은 이를 핵억지를 통해 저지하려 한다는 것이 바로 태영호의 설명이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체제 당위성적인 측면에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지만, 이를 R2P까지 연결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는 세이건의 핵확산의 안보모델 설명으로도 이어진다. 외부에서의 위협이 존재하며 체제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핵보유와 핵개발은 국가의 안보적 필요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가장 기본적인 설명이다. 기존의 북핵에 대한 안보모델의 설명은 여전히 대치 중인 분단 상태와 더불어 추격불가능한 미국의 군사능력에 대하여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변수가 아닌 1953년 한국전쟁 종전 이후에 변하지 않는 상수에 가까웠다. 이러한 설명으로는 왜 북한은 길게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부터 핵개발을 시작했으며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이처럼 절대적으로 핵무기와 핵투사능력에 목을 메고 있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해왔다. 여기에서 다른 변수로 등장한 것이 북한이 R2P에 대해 가지는 위협인식이라는 설명이 오히려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왜 북한은 2000년대 들어 가속화하였는지에 대해서 이른바 기존의 전통적 시각에서는 국내의 문제이자, 불가침의 국가주권 영역에 놓여 있던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의 외부 개입에 대한 위협인식과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핵무기와 핵투사능력에 투입되었다고 설명을 제시 가능하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최근에는 세이건의 세 가지 모델에서 안보모델과 관념모델의 절충으로서의 설명이 가장 많이 언급되어 왔다. 북한의 핵무장은 안보달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국가적인 상징과 김씨왕조의 위신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의 문제는 왜 북한이 90년대 중후반이 아닌 2000년대를 넘어가면서 급가속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위의 설명의 문제는 북한의 핵개발 동기에 대해 상수의 변수화를 통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허나 태영호가 제시한 유고내전에 대한 북한체제의 우려는 저 직접적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George의 과정추적 모델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R2P2000년대 이후로 국제정치를 변하게 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R2P는 냉전시대까지 유지되어 오던 강력한 기존의 베스트팔렌적인 국가주권적인 국제정치를 탈냉전이 들어서면서 국가주권이 국제 층위에서 어떻게 침식되는 지를 보여준 구체적인 개념이다. 엄밀히 말해 탈냉전이 들어서면서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연계는 보다 빈번해졌고, R2P는 기존의 국내정치 안에서 발생하던 인권 문제가 국제정치로서 호명되어 국가주권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허나 이는 북한에게는 국제적인 변화에 의한 안보위협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다른 국가들과 같이 정상국가화 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미국에 대한 적대를 통해 체제 내부를 규합하고 이에 저항하면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안보보다 선행하는 체제안보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따라서 R2P에 의한 체제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냉전기의 가장 확실한 억지라고 할 수 있었던 핵억지를 달성하려 했다는 것으로 태영호의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을 두고 미국과 협상을 하였지만, 북한은 단순히 이 협상을 통한 동결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우회와 돌파를 협상 때마다 모색했으며, 실제로 이러한 우회와 돌파에 의해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북한은 반드시 핵무기를 확보하려 했고 이는 북한체제의 안보인식과 강한 연관을 가질 것이다. R2P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핵억지, 그것이 유고 내전이 북한과 북핵문제에 가지고 있는 함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이혜정, 2009, “보호책임의 국제정치: 인권, 국가주권, 유엔과 미국패권”, 『국제지역연구』 184, p. 2.

  • 꼬마 2017.01.04 2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북한 문제는 사건이 전개될수록, 분석을 거듭할수록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 '협상'만으로는 해결이 가능하리라 생각은 하지 않지만, '협상'이 배제된 해결도 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존의 틀에서 북핵을 해결하리라고는 저 역시 생각하지 않습니다. 태영호의 발언은 현재까지 북한의 핵확산 동기를 파악했던 것과 달리 북한의 동기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지를 지적하는 주요한 설명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꼬마 2017.01.05 18: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일반인으로서 뭔가를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씀하신 바 모두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태영호씨의 발언과 협조가 북핵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틀의 창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