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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분노하지 않음에 규탄부터 안타까움까지 교차하는 반응을 보여왔다.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 시점이 언제부터인가를 생각해보면 꽤 오래된 것 같다. 10년 정도? 그들은 분노하지 않는지, 사회에 비판의식을 가지지 않음에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는 한심해 보였을 수도, 그들이 거저먹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는 코멘트 이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진지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저항하지 않는 지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왜 저항하지 않는 지에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그들과 자신을 다른 인격체로 간주하고 다른 인격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이다. ‘를 궁금해 하지 않는 다면, 솔루션을 도출하려고 해도 그 솔루션이 제대로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들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만 열심히 조명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솔루션을 제시했는 지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이다.


아직도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당신들의 분노에 대해 그러는지 귀를 안 기울이는 행위자나 분노하지 않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에 무엇이 다른 지 묻고 싶다. 이해없이 설득과 포섭은 불가능하지만, 그들은 이해도 없고 설득과 포섭도 부재하며 계몽만을 반복할 뿐이다. 물론 그 계몽의 의도가 선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악의적이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자신들의 책임도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사실 계몽은 더 이상 계몽이나 계명이 아니고, 세뇌와 주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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