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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필자가 대형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완전히 도는 데 들이는 시간이 보통 길어야 5시간-6시간이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고고학이나 박물학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은 편이고, 그림도 나름 열심히 봤기에 5-6시간이면 대부분 큰 박물관이라하더라도 무난히 다 돌고는 했다. 루브르라고 예외가 있겠는가라고 했지만, 파리 생활을 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2년 넘게 파리에 살았고 루브를 많이 방문했지만 루브르를 다 돌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그럴 수 있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루브르로 가는 7호선을 탔다.


지상에서 루브르로 접근하는 것보다 지하에 있는 카루젤 아케이드에서 접근하는 것이 짐수색 대기 시간이 짧다는 말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그 길로 루브르로 향했다. 그리고 루브르가이드 앱을 실행하고 위치를 확인하고 지도를 대략 살펴보고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우선 그 규모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그러나 가장 내가 크게 당황한 지점은 규모도 규모였지만 그 다음의 문제였다. 박물관이 무슨 체계로 되어 있는지 지도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샷톤후의 투구(대영박물관)


대항해시대 3를 했다면 친숙한 유물인 샷톤후의 투구가 있는 대영박물관[각주:1] 1번 전시실의 내용은 박물학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에 관한 전시이다. 조금 시니컬하게 받아들이자면 ‘대도’ 박물관이 존재해야 할 정당화의 작업으로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1번 전시실은 이른바 박물관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하고 있고, 박물관의 전시방향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그리고 그 이후의 전시는 이러한 방향에 입각해서 차곡차곡 이뤄져있다.


루브르는 다만 그런 게 없다. 이 점은 두 가지 가설로 설명 가능하다. 1번 안 만들었다, 2번 못 만들었다.  처음에는 안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둘러보고 난 다음에 결론은 만들지 못했다였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공간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인지, ‘갤러리’인지 혹은 고궁의 보존 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저 셋이 모두 맞는 동시에 저 셋이 모두 아닌 기묘한 공간이 바로 루브르였다. 


루브르는 리슐리외-설리-드농으로 삼 분할이 되어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루브르가 저 세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리슐리외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설리는 이런 것들, 드농은 이런 것들로 분할에서 전시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맞닥트리는 루브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시대 순으로도 잘 맞지 않고 문명간의 카테고리 전시로도 맞지 않다. 심지어 전시 품목의 카테고리로도 맞지 않다. 예를 들어말하면 리슐리외 관의 지상층은 5-19세기 프랑스 조각(주로 종교유물 전시)이 중심이 되는데 그 위의 층은 프랑스의 궁정 전시가, 그 위의 층은 북유럽 화풍이 중심이 된다. 설리관은 아주 혼돈에 극악에 빠지게 되는데 지상층은 오리엔트-이집트-그리스 유물 전시, 그 위층은 프랑스 궁정 장식-이집트-그리스 미술공예품 가장 위층은 19세기 프랑스 회화가 중심이 된다. 게다가 루브르 박물관을 보기 편하고 체계적인 관람이 가능한 입구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루브르에 비교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매우 체계적이고 동선관리도 잘 되어 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허나 애당초 루브르를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고 친다면, 루브르의 복잡성은 이해를 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애당초 프랑스의 왕권을 상징하던 궁이었고 여기에 배치된 장식물 + 귀족들의 소유물이 모여 이뤄진게 오늘 날의 박물관과 갤러리의 원형이라면 루브르는 그 박물관과 갤러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박물관과 갤러리라는 공간의 등장에 있어 루브르는 하나의 ‘전형’과도 같다. 박물관과 갤러리는 각기 그 공간의 발전과 발달에 따라 분화되고 기능이 강조되었지만, 루브르는 애당초 현대적인 의미의 박물관이나 갤러리로 만들어진 공간도 아니고 이른바 박물관과 갤러리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고궁이라는 면모도 보여줘야 하기에, 유물과 조소, 회화의 전시라는 기능에 방해가 되더라도 아폴론 갤러리나 나폴레옹 3세의 거처를 보여주는 등 고궁이라는 컨텐츠도 강조하고 있다. 


하나 더 보태면 대영박물관의 컬렉션의 논란거리이자 자랑인 엘긴마블의 전시와 달리 루브르는 자신들이 들고 온 유물들에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 까지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각주:2] 엄밀히 말하면 이는 현대의 고고학 발굴의 큰 떡밥들을 모두 무시하는 행위도 되지만 동시에 자기 변호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루브르라는 공간이 단순히 박물관으로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루브르의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대영박물관은 그것을 정당화하고 설명해야만이 박물관으로서의 '존재의 이유'를 가지는 데, 루브르는 그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신감이자 오만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될지 모른다.



공간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루브르는 오르세보다도 더한 낙제점을 받아야 한다. 단일한 건물에서 하는 기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다양하며 동선이나, 편의의 문제에서도 루브르는 사실 좋은 박물관이나 갤러리는 아니다. 다만 그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컬렉션과 더불어 이러한 동선과 편의의 단점이 단순히 무신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 통시적인 차원에서의 공간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을 루브르는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루브르의 가장 큰 매력이다.


2007년 이후 루브르가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루브르의 과거이다. 지하에서 발굴한 루브르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궁성을 전시하고 강조하는 등의 방향을 생각하면 루브르는 단순히 박물관, 갤러리, 고궁이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모든 공간은 기본적으로 독자성이 존재한다. 특히 역사적인 내용이 길어질 수록 이러한 독자성은 더 심화되게 된다. 고대의 파리시족의 성에서부터 프랑스의 궁, 사실상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박물관과 갤러리, 투명한 유리 피라미드까지 루브르는 그 공간에 쌓여 있는 역사를 지층처럼 간직하고 있다. 루브르를 정적인 공간으로서는 기능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정체성의 접근에서도 뭐라 규정하기 참 어렵다. 그러나 루브르만큼 통시적인 공간은 전세계에서도 희귀하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나마 이러한 면모를 보이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덕수궁이다. 임진왜란 이후 본래 월산대군의 가택을 궁으로 개조하고, 조선의 이궁으로서 오래 동안 쓰여져 왔다. 다양한 건물들이 더해졌고 여기에 미술관 갤러리로 이용된 석조전까지 더해지면서 다른 한국의 고궁에 비해 덕수궁은 굉장히 복합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편이다. 다만 루브르와 비교하면 그래도 단편적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의 문제도 개입된 것이 사실 맞지만 루브르라는 공간이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공간이라는 것도 감안해야할 문제이다. 더불어 프랑스의 역사보다는 한국의 역사가 훨씬 더 분절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은 이러한 역사의 분절때마다 사실상 새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파리라는 공간과 서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점에서 기인한다.


사족으로 붙이자면 루브르를 보는 데 투자한 시각은 루브르의 개장시간인 09시부터 18시까지를 꽉꽉채웠고 거기에 추가로 다음날의 야간개장까지도 이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리중이거나 휴식중인 전시실은 보지 못했다. 뭐 세계를 돌고 있는 루브르 소유의 유물도 보지 못했으니 다시 한번 가볼만한 사유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1. 1 영국박물관이라 표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박물관의 이름이 English Museum이 아니라 Brittish Museum이기 때문이다. 브리티시라는 것이 단순히 ‘영국’을 상징하기 보다는 그것보다 큰 영국을 말하기에 대영박물관이라는 번역이 영국박물관보다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2. 심지어 엘긴마블과 동일한 출처인 파르테논에서 가져온 조소들도 루브르에서 소장 전시중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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