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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아쉬운 기념물은 전쟁기념관이다. 어릴 때부터 박물관을 즐겨 다니면서 한국의 박물관과 기념관에 대해서 여러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기념관을 갈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언제나 느껴야 했다. 전쟁기념관에서 느끼는 곤혹스러움의 원인은 도대체 우리가 왜 그렇게 싸워야 했는가에 대해서 타자의 탐욕과 비도덕적 행위, 그리고 이념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진행되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고, 무엇을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결국 보이는 것은 우리의 상흔이다. 그러한 상흔의 기념이 복수심은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러한 상흔을 입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부족해진다. 결국 우리의 피해는 우리의 복수 이상의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켜온 것은 그저 우리 체제와 체제가 가지고 있는 이념이 전부였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 이념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러한 회의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답을 준 것은 런던의 제국전쟁박물관이었다. 그곳은 철저하게 영국군이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가를 역설하고 있었다. 단순히 전쟁사에 기리 남을 무기들만 전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기념의 상설 기념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를 기념하는 기념관과 9. 11을 기념하는 전시가 제국전쟁박물관에서 중요한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는가? 세계무역센터가 런던에 있었는가? 보스니아 학살과 르완다 내전이 영국에서 이뤄졌는가? (물론 책임이 있을 수는 있다.) 영국인들은 제국전쟁박물관에서 왜 이러한 것을 기념하는가? 거기서 드러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영국군이 싸워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영국군이 싸워온 이유에 대하여 단순히 영국의 국가이익을 넘어서 인류애를 위해 싸워오고 있는 것을 제국전쟁박물관이라는 기념물을 통해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제국전쟁박물관은 한국의 전쟁기념관과 달리 인류애를 위해 싸우는 영국군을 기리면서 영국군이 경애를 받아야 할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인류애에 반하는 사건에 대한 대척점에 영국군의 위치를 두고 그러한 사건들을 그려내면서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 지 숙고하게 한다. 분명 영국은 한 때 제국주의 국가였으며 영국군은 그러한 제국주의의 첨병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기념하는 것은 그 시절의 영국군이 아닌, 영국 본토를 방위하고 그것을 넘어서 인류애라는 가치를 수호하고자 하는 그 때의 영국군이었다.

새로 걸립된 대한민국박물관과 독립기념관, 그리고 전쟁기념관까지 우리가 기리는 것은 누가 우리의 가치를 침범하려 했고, 그것에 대해 우리는 싸워왔다는 투쟁의 서사구조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의 서사구조에서 우리라는 공동체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우리가 아닌 행위자들에게 과연 이러한 서사구조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고민해야 한다. 사견이지만, ‘우리의 차원보다는 인류애의 차원에 호소하는 영국의 제국전쟁박물관의 서사구조가 공감할 수 있는 차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나 731부대와 같은 비인도적 문제가 다른 제 3자들에게 얻는 방향이 큰 것도 어찌보면 이러한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의 투쟁은 단순히 우리가 피해자고 그것을 숭고하게 잘 지켜왔다는 차원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기억의 투쟁에서 교착상태에 빠지는 차원이 될 개연성이 크다. 기억의 투쟁에 임한다면 우리도 무엇을 기념해야하는 지, 한번쯤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기념물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구조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아무 의미 없는 박제들로 가득 찬 창고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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