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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어떠한 문제보다 그 문제에 대하는 행위자들의 인식이나 시각이 중요함을 느끼고는 한다. 요즘의 들어 한일관계에서 역사인식이 빚어내는 문제들에 대한 미국의 시각의 변화를 보면서 느낀다. 적어도 미국은 이전까지 한일관계에서의 역사인식 문제를 국가간의 감정싸움 문제 이상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다. 즉 동북아의 국가관계에 있어서 한일간의 역사문제를 구조적 층위의 하위의 문제로 간주하였으며, 이는 안보 문제를 비롯한 기타 중요한 문제를 해치지 않는 부차적인 문제로 바라보았었다. 적어도 이는 냉전체제가 유지되던 시절, 그리고 다른 변수를 찾자면 일본의 자민당 체제가 유지되고 한국이 권위주의 정부가 존재하여 즉 국내정치적 요소가 안정적이었던 시기에는 이러한 역사문제가 대외정책적 차원에서는 관리가 가능했었다.


 

다만 자민당 체제가 무너졌고, 그 과정에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한국 역시 민주화가 진행되며 국민의 지지와 투표행위에 민감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가 민주화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이는 과거 역사의 문제의 불씨가 화해되거나 종결된 것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제였음을 암시하는 바였다. 그 동안 일본은 경기침체 및 국내정치적 동원의 목적을 통한 우경화의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러한 우경화의 움직임의 시작은 처음에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망언으로부터 표상되었지만 점차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그러한 움직임은 본격화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회 전반적인 하나의 움직임이 되었다.

 

중국이 부상하고, 북한이라는 안보적 위협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동아시아의 두 동맹국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도 가장 절실해졌다. 냉전기에 있어서는 소련과 중국에 위협에 대응하기에 미국만으로 충분했으며, 탈냉전기 들어서 오히려 기존의 안보 동맹의 필요성이 떨어지고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북한의 안보 위협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에게는 다시 동아시아의 안보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여기에 미국은 이전처럼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관리 가능한 문제로 간주했으며, 이른바 미국의 리더십을 통해 역사인식 문제를 동결시키고 양국의 안보협력을 이끌어 내어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안정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일본의 정치권은 공식적인 석상에서 이전의 전쟁범죄와 식민지범죄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수준이 아닌 부정하는 수준까지로 발언의 수위를 증대하였으며, 이에 한국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 정부가 양 국가 모두 들어서고 자리를 잡았던 김대중-오부치 정부의 양 국의 밀월관계는 지금에 와서는 기대하기 매우 어려워졌고 이는 미국의 예상과는 분명히 다른 상황이었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부통령인 바이든을 한일 양국에 방문시켰고 이전처럼 비공식적 영역에서의 합의를 통해 한일간의 역사인식 문제를 관리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비공식적인 합의는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와 그 뒤를 이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박살났고 동맹의 맹주로서의 미국의 위신도 땅에 떨어지게 된 셈이다.






 

이를 일본 정부의 광기적 충동으로 본다면 사실 예외적 사례로서 지금의 상황을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김대중-오부치 정부 이후 한일관계는 잘해야 관리된 정도였지 정치적 영역에서의 협력은 확대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이는 역사인식 문제가 안보영역과 별개의 문제이며 지엽적인 문제로 봤던 미국의 인식과 시각에 구조적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만들어 준다. 현실주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분명 역사인식과 같은 문제는 현재 힘의 균형이 변하는 동아시아 구조에서는 그리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의 동아시아의 한일관계는 냉각되다 못해 꽁꽁 냉각되어 있다. 이는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분명 빗겨나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역사인식 문제로 악화된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이승만 시기의 거의 으르렁대는 수준의 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역사인식 문제가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분명 그것도 한계가 있는 변수라는 것이다. 특히 안보 문제와 경제적 협력이 실존하는 이상 한일관계가 해체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는 한일간의 안보협력 문제로 바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과연 역사인식의 간극이 양국 사이에서 심화된다면 한일의 안보협력은 미국의 뜻대로 강해질 수 있을까? 설령 그것을 양국 정치의 리더십이 강화시킨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지지해줄 수 있을까? 만약 지지를 못 받는다면 그것은 과연 안정적인 협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미국의 인식적 측면에서 오인을 하였다. 다만 미국의 정책결정자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는 정말 역사인식 문제가 안보협력과 관계가 있다면,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날처럼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레임으로만 바라본다면 미국은 계속 한일관계의 늪에 빠져서 동아시아의 동맹정책에 대해서 끊임없는 재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가는 지금 아베 정부의 외교정책으로도 미국에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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