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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Politics of Identitiy

야스쿠니의 대안 촉구에 대한 일본발 보도에 대하여


내 연구소재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라는 것은 참 오묘하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시설이 아닌 종교시설이지만, 국가적 시설 및 공공적 시설로 간주되고 있으며, 미국의 알링턴 묘지나 한국의 현충원 같은 국가 추모시설로 일본 내에서는 여겨지고 있다. 치도리가후치와 같이 더 적합한 시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모든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바라볼 때 조금은 이상한 일이다. 결정적으로 신토의 중심인 덴노조차 종전 이후 쇼와부터 현재의 아키히토까지 참배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외교문제를 가져온다는 인식은 사실 일본에 있는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이러한 바탕하에서 요미우리 신문이나 아사히신문은 모두 야스쿠니 대체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두 신문의 관점은 많이 다르다. 아사히신문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야스쿠니는 잘못된 관점에서의 집단기억이며 더불어서 그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어떻게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국가에서 종교시설이 국가시설로 여겨지고 있는 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입장은 "누구든 거리낌없이 전몰자를 추도할 수 있는 국립 시설 건립을 깊이 논의해야 한다"는 문제이다. 즉 다양한 야스쿠니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와중에 굳이 정부가 한쪽 시각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과연 정치적인 효율성을 가지는 지에 대한 지적이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을 더불어 심지어 미국도 야스쿠니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 국무·국방장관이 비종교적 국립 추도 시설인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방문한 것은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신중한 대응을 요구한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고 풀이하며 정치적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야스쿠니가 많은 비효율성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다. 단 아사히신문과 분명히 입장이 갈리는 지점은 아베 총리가 올해 봄·가을 제사와 패전일에 야스쿠니 참배 대신 공물 봉납 등을 했는데도 한국과 중국이 이를 적극 받아들이지 않아 유감이라고 한 부분인데 여기에서는 참배가 아닌 공물 봉납 정도면 일본은 성의를 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여전히 야스쿠니는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시각은 야스쿠니가 가지고 있는 정당성에 문제를 삼았다면 요미우리신문의 시각은 야스쿠니가 가지는 정치적 효율성에 문제를 삼은 것이다. 여기에서 야스쿠니의 대체라는 똑 같은 제안이 나왔지만 어쨌든 이 두 방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아사히신문의 시각의 접근은 이에 대한 대안이 기존의 야스쿠니적인 집단기억이 배제된 대안으로서의 추모시설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요미우리신문의 접근에서는 야스쿠니를 포기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야스쿠니적 기억을 견지한채, 다른 시설을 짓고 그것을 국가시설화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기억의 정치의 시각에서 보자면 아사히신문은 야스쿠니가 가지는 집단기억이 문제라는 돌직구를 날렸다면, 요미우리신문은 기억의 정치를 우회해서 외교문제의 차원을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일본이 보여주는 집단기억에서 야스쿠니적 기억만이 문제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아사히신문의 방향이 한국과 중국이 원하는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인정과 진정한 반성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의 방법은 일종의 면피용적인 방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굳이 더 짚어보자면 이는 미국의 우려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일 개연성이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야스쿠니 신사의 중요한 지점은 야스쿠니 신사라는 시설이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가 표출하는 추모의 방식과 기억의 문제이다. 요미우리신문의 방식에 한국의 언론들이 호감을 표하기에는, 요미우리신문이 가지고 있는 시각의 전제와 논점이 여전히 한국이 원하는 방향과는 많이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