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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Politics of Identitiy

왜 '재생산'이 아니라 '증폭'인가?

 개인적으로 난징대학살과 이를 비롯한 동북아의 과거사 문제에 있어 일본의 의도와 behavior를 말할 때 ‘망각의 증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보통 정체성이나 인식, 관념적 측면에서 학계는 전반적으로 재생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산은 이른바 최소한 일본의 의도와 behavior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생산은 기억의 정치의 형성에 있어 추모와 내러티브 채집 및 공식화, 그리고 재생산으로 이뤄지는 과정에 있어 대단히 매커니즘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순차적이며 선행관계가 명확한 관념이 바로 재생산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 있어서는 망각은 하나의 인위적 선택이며, 이러한 인위적 선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망각을 인위적으로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것은 재생산 중에서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며 혹은 기억의 정치의 재생산과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요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성이 명확한 ‘증폭’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한 증폭은 2차원적인 모형으로 표현하면 본래 spiral한 형태로 확장된다. 역시 일본의 행태 역시 이러한 증폭의 2차원적 형태와 맞닿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재생산보다는 증폭이라는 어휘가 더 적절하다 생각한다.

그림으로 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확실한 점은 재생산에서 중첩되지 않은 면에 일본의 ‘망각’이 놓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개념의 엄밀성을 기한다면 ‘증폭’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다만 일본의 망각이 재생산과 증폭의 교집합 영역에 놓여 있는지 증폭의 단독적인 측면에 놓여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을 아마도 검토하는 일이 남아있는 듯하다. 이러한 검증은 사실 중요하다. 기억의 정치에 있어 ‘재생산’이라는 관념이 적절한지에 대한 본론적인 검증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하는 중이다. 망각의 증폭적 성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보다 세밀한 작업을 앞으로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