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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텀페이퍼 두편을 완성하며 든 생각..

난징대학살과 그에 관련한 기억의 정치가 중일관계 작용하는 논문을 썼다. 논문의 결론은 결국 기억의 정치가 중일관계를 결정짓는 변수는 못되지만 중일관계의 다이내믹의 변수로는 작동하며 내부에서의 작동하는 기억의 정치는 지속적으로 증폭된다는 결론이었다. 의미있는 논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논문형태를 띄지 못한 텀페이퍼지만 이 정도의 결론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충분하다고 생각해본다.

논문에서 내고 싶었던 함의는 정체성 문제로 확장된 과거사 문제는 양쪽이 협상을 한다고 해서, 혹은 어느 한쪽이 사과를 한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반성을 한다고 해서 해결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내부에서 증폭되며 문제를 양산할 것이며 국가나 정치적 행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관리하는 정도이지 과거사 문제를 종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덴노가 독립기념관 와서 과거에 대한 사과를 한다고 해서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이는가? 일본 내부에서는 여전히 딴 소리가 증폭되서 망언으로 지속될텐데?

동아시아에서 내재된 폭탄은 바로 난 과거사와 연관된 기억의 정치라고 생각해본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것이고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통의 교과서가 나온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기존의 국가 정체성을 수정할 수 있을까? 국가정체성을 국가가 기획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의 턴키를 국가가 쥐지는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턴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지속될 뿐이다. 기억의 정치를 출발할 수 있지만 기억의 정치 자체를 제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억의 정치는 신중해야 한다. 이를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니 더욱 그러하다. 그저 내부로의 증폭이 지속될 뿐이다. 독일처럼 아예 처음부터 그러한 국가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랬어야 이는 증폭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시아이기 때문에 이러한 증폭이 더 활발할 수도 있다. 결국 난 일본이 사과를 하던, 사과를 하지 않던 한일관계와 중일관계에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관리할 수만 있을 뿐이다. 어려운 인정이지만 이를 인정해야 만이 기억의 정치가 국제정치를 사로잡지 않게 된다. 기억의 정치역시 분명 중요한 문제이지만 국제정치의 결정적인 문제를 이에 사로잡혀 결정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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